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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나무에게서 배우는 교훈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5-03-24 (화) 01:18 조회 : 789
2015년 3월 22일 (주일) 목회수상

"무화과 나무에게서 배우는 교훈"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을 보기 위해서는 한국 방송을 빌려주는 비디어 대여점에 가서 보고 싶은 방송을 빌려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인터넷의 발전으로 보고 싶은 방송을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시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 한국 뉴스를 보면서 고국의 소식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가 생겨서 멀리 있는 지인들의 소식도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터넷은 잘만 사용하면 득이 되는 유용한 도구입니다. 제게도 인터넷은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당장은 교회 홈페이지도 볼 수 있고, 이메일을 통해 소식을 주고 받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다양한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얻습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에 있는 지인들의 자료를 통해 좋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페이스북을 열어보곤 합니다.

제 페이스북 친구 중에는 특별히 공부를 통해 만난 두 분의 소중한 지인들이 있습니다. 한 분은 지금 일리노이에 있는 한 미국인 회중 교회를 담임목회하고 있는 목사님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분은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키우면서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 과정 중에 있는 가정 주부입니다. 최근에 그분들과 페이스북을 통해 인사를 나누면서 11년 전을 함께 회상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4년은 서울 강남에서 한창 유학 준비를 하던 시절입니다. 미국 유학을 오기 위해서는 토플이라고 하는 시험에서 유학에 필요한 점수를 얻어야 유학 원서라도 접수할 수 있어서, 토플 점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시험을 치러도 치러도 목표하는 점수에 늘 약간 모자라서 속상해 했었고, 결국에는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함께 공부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섯명의 그룹원이 모였는데, 결국 끝까지 남은 사람이 바로 일리노이에서 목회하고 있는 목사님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공부를 하고 있는 선배님, 그리고 저 이렇게 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먼저 2005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왔고, 일리노이에서 목회하고 있는 목사님이 그 다음 해에 유학을 왔고, 당시에도 가정 주부셨던 그 선배님은 몇 년 후에 출산을 하시고 남편을 내조하는 데에 전념하시다가 외국으로의 유학보다는 국내에서 공부를 계속하시기로 결정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중간에 간간히 연락하면서 서로의 소식을 전했지만 최근에 또 다시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의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계시는 선배님이 '자신은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 것 같다' 라는 글을 남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일리노이에서 목회하고 있는 목사님도, '절대 아닙니다. 선배님이 더 대단하십니다. 자식 키우면서 박사 공부까지 마무리 하시고, 남편 내조까지 하시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런 글을 남기면서 서로 격려했습니다. 그러고보면, 저는 박사과정 한 학기 하다가 그만 두었으니 학력으로 따지면 한국에 있는 선배님이 더 좋은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더 잘 되었다, 좋은 열매 맺었다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 있는 그 선배님과 일리노이에 있는 그 목사님을 소중한 추억으로 회상할 수 있는 것은 그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선한 영향력을 받을 수 있어서 인 것 같습니다.  10여 년 전에 함께 공부할 때도 얼마나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도 서로의 삶의 자리에서 서로에게 얼마나 선한 도전을 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어야 합니다. 

이번 주일 설교로, 마가복음 11장에 나오는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 말씀을 묵상하면서 무화과 나무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 이야기는 수수께끼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왜 이 말씀을 하셨는지 그 목적과 의도를 알게 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번 주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가 나온 신학대학의 총장님이셨던 김득중 목사님의 책을 다시 한번 읽어봤습니다. 그리고 아래의 글은 그 책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무화과 나무는 상당히 많은 분량의 영양분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나무들에게 필요한 영양분까지도 빼앗아 버린다. 이런 점에서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는 다른 나무들에게 피해만 입히며, 이 때문에 오히려 찍어버리는 것이 모두를 위해 더 유익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 비유는 심판의 비유가 된다. 누가복음에서는 무화과 나무에게 한번의 기회를 더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비유는 자비의 비유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비의 기회가 영원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화과 나무의 경우 최소 1년의 기회가 더 주어졌다. 그러므로 1년 후에는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어 지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 이 땅에 계시면서 우리들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주셨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까지 짧은 은혜의 시간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지금 이 땅에서 심판을 당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의인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장에 심판이 임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시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자비의 표식일 뿐이다. 그래서 특별히 누가는 자기 시대 기독교인들 중 별다른 불행을 당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안일과 자만에 빠진 채 필요한 회개의 열매를 맺지 않는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하나님의 자비 때문에 또 다른 일 년의 유예 기간을 사는 자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각성하고 회개하여 회개의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도록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이 비유의 명칭으로는 "또 다른 한 해의 비유" (the parable of the extra year)가 누가의 의도에 더 적절할 것이다."  (김득중, 복음서의 해석과 설교에서 인용)

마가복음 11장에 나오는 말씀에는 열매 맺지 못한 무화가 나무가 말라 죽어버렸지만 누가복음에서는 일년 더 기회를 달라고 부탁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누가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유대인들에게서 전해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내 아들아 너는 물가에 서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와 같다. 주인이 그 나무를 잘라버리려고 하자 나무는 그에게 말했다. '나를 옮겨 심어 주십시오. 그리고 만일 그 때에도 내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나를 잘라 버리십시오.' 그러나 주인이 그 나무에게 말했다. '네가 물가에 서 있으면서도 아무 열매를 맺지 못했는데 내가 다른 곳에 옮겨 심는다고 어떻게 네가 열매를 맺겠느냐?'"
(주전 5세기 부터 유대인들에게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공동체라는 소중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혼자서는 넘어지기 쉽기 때문에, 그리고 시험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서로 격려하고, 이끌어 주라고 우리에게 공동체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11년 전에 토플 공부 혼자 아무리 열심히 해도 늘 조금씩 점수가 모자라서 속상해했던 저에게 스터디 그룹은 제가 목표로 했던 점수를 이루어준 참으로 소중한 공동체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교회 공동체를 온전히 이끌어 나가시기를 원하십니다. 서로에게 좋은 열매 를 맺게 해 주는 열매 맺는 무화과 나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상대방의 영양분까지 빼앗아 먹어버려서 함께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달고 맛있는 열매를 서로에게 공급해 주는 서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서로 위해 기도해 주고, 서로를 위해 사랑으로 감싸주고 아껴주면서 교회 공동체, 가족 공동체, 저와 여러분이 속해 있는 공동체를 하나님 원하시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세워 나가기를 소망합니다.

한 주간도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