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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도하는 사랑의 공동체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5-05-06 (수) 06:01 조회 : 871

March 29, 2015

함께 기도하는 사랑의 공동체

      1975년, 온두라스의 수야파 (Suyapa)라고 하는 작은 빈민가의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마을에는 클라우디아라고 하는 일곱 살 난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시각장애가 있었던 클라우디아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해야 하는 보호시설에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에게 필요한 제대로 된 교육과 돌봄을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클라우디아는 대인기피증이 생겼고, 늘 고통과 분노에 가득 차있었습니다. 의학적인 용어를 빌려서 표현하자면 클라우디아는 심각한 자폐증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온두라스에는 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슈 (l'Arche community)가 있었습니다. 클라우디아는 라르슈 공동체로 오게 되었고, 그 곳에서 다른 지체들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클라우디아가 라르슈 공동체로 첫 발을 내디뎠을 때만해도 그녀는 극도의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전에 살던 곳이 지나치게 형편없는 보호시설이었지만 그래도 익숙했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또 다시 적응해야 한다는 현실이 어린 클라우디아에게는 무척이나 힘든 순간이었겠지요. 그래서 매일 매일 클라우디아는 소리질렀고, 심지어는 자신의 대변을 벽에다가 문지르는 등, 심각한 부적응, 부조화 상태를 보였습니다.

20년 후, 라르슈 공동체 운동을 시작한 쟝 바니에 (Jean Vanier)가 온두라스에서 성인이 된 클라우디아를 다시 만났을 때, 클라우디아는 너무나도 평안했고, 라르슈 공동체 안에서 다른 장애우들을 섬기는 등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클라우디아가 변한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클라우디아는 혼자였지만 20년 전과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녀가 자신의 외로움과 고독을 더 이상 인생의 절망과 비극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식사시간, 쟝 바니에가 클라우디아에게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클라우디아, 내가 무엇 하나 물어보고 싶은데 괜찮니?"

그러자 클라우디아가, 괜찮다고 물어보시라고 대답합니다.

바니에의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클라우디아, 뭐가 그렇게도 행복하니? 그 이유를 말해줄 수 있겠니?"

 바니에의 질문에 클라우디아는 다음의 한 단어로 그 이유를 말했습니다.

"Dios"

디오스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바니에가 온두라스 라르슈 공동체의 리더에게 클라우디아가 말한 정답의 의미가 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라르슈 공동체의 리더의 대답이 정말 명답입니다.

"그것이 바로 클라우디아의 비밀이랍니다!" 리더는 활짝 웃으면서 클라우디아의 행복의 비결을 말해 주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시각 장애인이고, 어렸을 때는 불행한 환경에서 자라날 수 밖에 없어서 자폐증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각한 장애를 앓고 있었던 클라우디아가 지금 행복해할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바로 하나님 덕분이었습니다. 외로움과 불안함 속에서 클라우디아는 방황했고 괴로워했습니다.


 

그러했던 클라우디아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행동은 소리 지르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과격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랬던 클라우디아가 라르슈 공동체에 와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난 것입니다. 라르슈 공동체에서 사랑과 우정과 진정한 평안에 대해 배우고 경험하고 그리고 전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쟝 바니에는 클라우디아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의 일곱 가지 측면에 대해서 말합니다.

첫 번째는 드러내고 나타내고 표현하는 것 (to reveal)입니다. 내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두 번째는 이해하는 것 (to understand) 입니다. 클라우디아가 소리지르고 지저분한 행동을 하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 안에 두려운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라르슈 공동체에서는 그 아이에게 전문적인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모든 폭력적인 행동에는 이해 받고 싶어하는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넓은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을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소통하는 것 (to communicate)입니다. 소통이야말로 사랑의 핵심이라고 바니에는 말합니다. 소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것입니다. 들어야 서로 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는 칭찬하는 것 (to celebrate)입니다. 저는 축복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서로의 장점까지도 칭찬해주고, 축복해주면서 격려해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다섯 번째는 힘을 북돋아주는 것 (to empower)입니다. "To love means to empower." (사랑하는 것은 상대방의 힘을 북돋아주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면서 그 사람의 능력을 향상시켜주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교제 안에서 살아가는 것 (to be in communion), 다시 말해서 서로 신뢰하면서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둘 이상의 사람이 모여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모임,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용서하는 것 (to forgive)입니다. 어쩌면 사랑하기보다 어려운 것이 용서하기 일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의 일곱 가지 측면을 어린 클라우디아는 공동체의 사람들로부터 받았고, 함께 나누었고, 그래서 서서히 변화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바니에는 함께 기도하는 공동 기도의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모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주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그 명령 지키기 위해 우리는 모두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 새벽 시간, 공동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모릅니다. 그 기도를 통해 클라우디아와 같이 상한 우리들의 심령이 회복되고 변화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공동체와 우리 가정과 일터와 이 나라, 이 민족을 온전하게 회복시켜 나아가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공동체 안에 속해 있기에 함께 기도합니다.

함께 기도하는 기도의 시간이 참 소중하고 귀합니다. 이제 오늘을 시작으로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고난도 함께 경험한 공동체가 주 안에서 더 귀하고 강하게 쓰임 받습니다. 고난 주간 특별히 함께 기도하기를 소망합니다. 그 기도의 능력으로 우리 공동체가 사랑의 공동체로 거룩하게 쓰임 받게 되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특별히 이 한 주간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와 사랑 안에서 성결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