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게시물 213건, 최근 0 건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기!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7-09-08 (금) 23:16 조회 : 200

August 6, 2017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기!

 

     예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을 향해 이 세상에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속에서 소금의 삶, 빛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박영선 목사님이 소금과 빛의 삶에 대해서 설교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언젠가 미국에 있는 신학교 학장과 교수 몇 분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래서 박영선 목사님이 수행을 도왔습니다. 본인의 차에 미국 신학교 교수님들을 태우고 서울 시내를 운전했습니다. 그런데 박 목사님이 직접 운전하는 차를 탔던 미국 교수님들이 깜짝 놀란 것이었습니다. 운전자가 신호등을 적당히 무시하고, 보행자 신호가 들어왔는데 횡단보도에 차가 걸쳐 있고,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데 사람들 요리조리 피해서 운전하는 잘못된 운전습관을 그대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 모습을 직접 목격한 미국 교수님들이 상당히 놀란 것이었습니다. 박 목사님이, "! 서울은 인구가 너무 많고 차가 너무 많아서 이렇게 운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통 흐름도 지킬 수 있습니다." 박 목사님이 그 당시에는 그렇게 말했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는 가슴이 덜컹거리고 많이 후회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이렇게 회개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높은 신앙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아주 기초적인 부분에서 아무 것도 제대로 쌓아놓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피라미드를 쌓듯이, 밑 부분은 넓고 올라 갈수록 좁아지는 탑을 쌓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벽돌을 세워서 한 줄로 쌓아 놓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 아슬아슬합니다. 어느 때는 그 꼭대기가 구름을 뚫고 올라가 있고 어느 때는 하루 아침에 다 무너져 있습니다. 별 것 아닌 데서 우리는 신앙의 힘이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본질과 기초가 엉망인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제가 질문을 했습니다. "아빠가 운전 잘 해, 아니면 엄마가 운전을 잘해?" 아이들이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빠는 노란 불에도 운전을 하는데, 엄마는 노란 불이 되면 차를 세워!" 제가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 금새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아이들은 운전을 노련하게 잘 하는 것보다는 아빠와 엄마의 운전 습관을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한 때 저도 운전 잘 하는 것에 대해서 가장 빨리 목적지에 사고 내지 않고 도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운전을 하면서 교통 신호 잘 지키는 것, 교통 경찰 때문이 아니라 교통 법규는 지켜야 하는 원칙이기 때문에 스스로 교통 신호 잘 지키면서 운전하는 것이 운전 잘 하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보는 데서만 노란 불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항상 신호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십 년이 훨씬 지났지만 잊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신학대학교 1학년 때에 한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제 기억에 기독교 입문이라고 하는 강의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로 기억납니다. 그 교수님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목회하다가 한국으로 오셔서 교수로 섬기신 분입니다.

 

미국 시골에 있는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 시골 교회에 젊은 목사가 새로 부임했습니다. 교인들도 모두 좋아 보였고, 교인들도 새로 온 목회자 가정을 환영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교인들 심방을 하면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 동네에는 산이 있고 강이 있었습니다. 산 정상에서는 나무를 베었고, 산 아래에는 베인 나무를 가지고 나무를 다듬어서 판매하는 목재 공장이 있었습니다. 산 위에서 벌목한 나무를 그대로 강에 던지면 그 나무들이 강을 타고 하류까지 내려갑니다. 그러면 강 하류에 있는 목재 공장에서는 그 나무를 거두어서 다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강 중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도 강 중간에 많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를 그 새로 온 목사가 발견한 것입니다. 교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나무를 중간에서 슬쩍 해서 이윤을 챙기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너무나도 일반적인 일이 되어서 교인들 서로도 그것이 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 목사님이 고민하다가 이러한 제목으로 주일 설교를 했습니다. "도둑질하라 말라!"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이 걱정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내 설교를 듣고 너무 깊은 상처를 받았으면 어쩌나. 하지만 도둑질해서 지옥에 가는 것보다는 낫지' 걱정했지만 그 걱정은 잘못된 걱정이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환하게 미소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나무를 훔치면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다음 주 설교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했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특별히 네 이웃의 것을 탐하지 말라!" 이번에는 십계명의 일곱 번째 계명과 열 번째 계명을 함께 설교했습니다. 그런데도 교인들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목사님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다음주 설교의 제목을 이렇게 잡았습니다. "흘러가는 강의 중간에서 남의 나무를 도둑질하지 말라!" 그리고 설교를 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교회에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1993년에 제가 기독교 입문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 지금도 잊지 못하는 그 이야기의 결론은 바로 그 목사님이 그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목사님은 더이상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를 떠나가 주세요!" 결국 교인들에게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설교한 그 목사님은 그 시골 교회를 떠나가야 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들었던 이야기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장소에서도 구별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을 항상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야 하는데 날마다 많이 부끄럽습니다. 이 세상을 위해 오늘도 소금이 되고 빛이 되기 위해 최선 다해 살아야겠습니다. 한 주간도 소금과 빛이 되어 우리 모두가 행복한 한 주간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