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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과 맹세, 그리고 진실함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8-02-28 (수) 01:32 조회 : 462

October 22, 2017

그리스도인과 맹세, 그리고 진실함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걸고도 맹세하지 말고, 땅에 걸고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을 걸고서도 맹세하지 말고, 네 머리를 걸고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5 34-36). 예수님께서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사실 성경 속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맹세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삭의 아내를 찾으러 보내면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충실한 종에게 맹세하게 합니다. 야곱도 요셉과 다른 형제들에게 맹세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공회 앞에서 대제사장이 하나님께 맹세하라 그러면서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말하라고 했을 때, 그의 말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네가 그렇게 말했구나" 침묵을 깨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 63-64).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말씀에서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율법을 또다시 자기들 임의대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율법에 나오는 맹세를 자의적으로 해석했습니다. 한 마디로 자기들 편하게 편집해서 적용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구약에서 강조하는 맹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하는 맹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올려 드리는 맹세이니만큼 반드시 책임을 다해 맹세한 내용을 지켜야 함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절대로 맹세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과 맺은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러한 율법에서도 지켜도 되는 약속과 지키지 않아도 되는 약속을 구별해 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자신들 편의에 맞춰 율법을 적용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지난 주 설교 말씀에서 나누었던 이혼과 재혼에 대한 율법에서도 모세는 이혼을 어렵게 하고, 신성한 결혼 생활을 지켜 주기 위해 하나님의 율법을 전했는데, 바리새인들은 모세가 전한 이혼과 재혼에 대한 율법을 근거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혼 규정을 마련해 주셨다고 해석해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 맹세를 합니다. 약속한 것을 재확인하기 위해 맹세를 합니다. 상대방의 진실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맹세를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맹세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가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맹세하는 것 같습니다. 흔히 법정에서 증인 선서를 합니다. 위증(선서를 한 후에 거짓을 말하는 것)을 하지 못하도록 선서를 하는데 간혹 증인들 가운데 위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얼마나 거짓을 증거하고 사람을 속이면 증인 선서를 하고, 사람들 앞에서 맹세를 할까요! 미국 드라마를 보면 거짓말을 하고서 손가락 중지와 검지를 상대방이 못 보는 위치에서 동그랗게 말아서 자신의 거짓말을 정당화 하려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론 드라마 상에서는 피치 못할 상황이라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을 때, 그러한 모션을 취합니다. 하지만 거짓말은 거짓말입니다. 아무리 손가락으로 그러한 모션을 취했다고 해도 이미 그 사람은 거짓 증거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무지 맹세를 하지 말하고 하시면서 하늘로도, 땅으로도, 예루살렘으로도, 네 머리로도 맹세 하지 말하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온 우주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는데, 무엇은 거룩하고 무엇은 속되다고 우리 인간이 판단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마태복음 23장에 나오는 말씀과 같이 무엇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고, 무엇으로 맹세하면 지켜야 하는 등 맹세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구별을 임의대로 정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다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 자기 머리카락 색깔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인데, 우리가 어찌 맹세의 대상을 우리 임의대로 정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맹세의 대상으로 걸고 하는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모든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여러 친구들과 한 친구의 아버지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그분은 5공화국 시절 국가의 최고의 권력자의 비서실장이셨던 분들과 친분이 있으셨던 분이었습니다. 친구의 아버님은 한 친구, 한 친구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저에게는 무슨 공부를 하고 싶으냐고 하셔서 저는 정치 외교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정치 외교학은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도 인기가 높지 않은 분야였습니다. 그랬더니 친구의 아버님께서 정치를 하고 싶으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서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그분께서 저에게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거짓말 잘 하니?" 철이 들고, 세상 돌아가는 내용에 대해서 조금씩 이해하면서 정치인들이 꼭 진실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충분히 알 것 같은 내용인데도 모른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고, 기억이 확실히 나야 되는 사건인데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 뉴스는 잘 시청하지 않았는데 2014년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서 한국 사회에 대해서 걱정하고 염려하기 시작했고, 작년10월 말에 수면 위로 드러난 절대로 상상할 수 없었던 사건으로 인해서 한국 뉴스를 시청하기 시작했습니다. 맹세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면서 정직함과 진실함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봅니다. 특히 정치인들은 더 정직하고 더 진실해야 합니다. 거짓은 결국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인터넷 시대이기 때문에 거짓이 드러나는 시기가 훨씬 앞당겨졌습니다. 진실해야 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임의대로 수정하고 편집하고 편의를 봐서 지키려고 했던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책임감을 다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인 척 가장하고, 뒤에서는 악한 인간의 본성 그대로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전임 대통령이 구속되어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목회자는 정치적인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정치적인 성향은 확실하게 있습니다. 하지만 교인들 앞에서 목회자는 정치적인 중립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믿습니다. 특히 설교 강단에서 그리고 이와 같은 목회 수상에서는 정치적은 견해를 피력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저는 특별히 나라와 민족과 교회의 지도자들과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성경 속에 나오는 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솔로몬왕이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고 나서 꿈을 꿉니다. 그 꿈 속에서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선악을 분별하여 백성들을 바르게 재판하고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나서 솔로몬 앞에 두 여인이 등장합니다. 두 여인에게는 각각 갓 태어난 사내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자다가 그만 그의 갓난 아이 위에서 자게 되어서 아기를 질식사 시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은 아기와 다른 여인의 아기를 바꿔 치기 합니다. 이 두 여인이 솔로몬 앞에 나와서 살아 있는 아기가 서로 자기의 아기라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이 판결을 내립니다. 칼로 아기를 둘로 쪼개어 반반씩 주면 공평하겠다고 판결을 내립니다. 그러자 한 여인은 너무나도 현명한 판결이라고 동의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 여인은 그 아기를 내가 포기하겠으니 그 아기를 살려서 저 여인에게 주라고 부탁합니다. 솔로몬이 판결을 번복합니다. 아기를 살려 달라고 한 여인이 친 엄마가 맞으니 산 아기를 저 여인에게 주라고 최종 판별을 내립니다. 국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시민들이 서로 분열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내편, 네 편 가르지 않습니다. 나라를 진실하게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국가와 국민 앞에서 맹세했기 때문입니다. 그 맹세를 지키는 지도자 되기를 소망합니다. 맹세는 신성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 앞에서 하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한국을 위해서 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어머니 나라,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모국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