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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5주기, 벌써 5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글쓴이 : 사바나한인연합감… 날짜 : 2019-04-14 (일) 09:06 조회 : 149

April 14, 2019

 

“세월호 5주기, 벌써5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저에게는 큰조카 재은이가 있습니다. 재은이의 이름에는 “다시 찾은 은혜”라는 뜻이 있습니다. 재은이가 태어나던 해가 1997년입니다. 제가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던 시절이고, 대학원의 두 번째 학기를 보내고 있을 때 재은이가 태어났습니다. 대학 다닐 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 제가 참으로 놀랍게도 대학원에 들어가서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가끔 강의 빠지는 것이 학생의 미덕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결석도 가끔 했던 학생이었는데, 대학원에 들어가서는 대학원생이 강의를 빠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학업에 매진했습니다. 1997 10 1, 한국의 국군의 날에, 제가 대학원의 두 번째 학기를 열심히 다니고 있었던 때에 드디어 큰조카 재은이가 태어났습니다. 우리 집안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손주였기 때문에, 그리고 조카였기 때문에 재은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재은이는 온 가족의 사랑과 축복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재은이가 태어나고 그 다음 날, 재은이를 낳은 엄마에게 문제가 일어나서 재은이 엄마는 그 이후로부터 열흘 이상을 코마 상태에 빠졌습니다. 온 가족의 사랑과 축복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태어난 재은이였지만 엄마의 상태가 초비상 상태였기 때문에 재은이에게 향했던 관심은 어쩔 수 없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엄마에게로 집중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재은이의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아야 했고, 재은이는 태어나자 마자 엄마 품을 떠나 멀리 멀리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에게 보내졌습니다. 나중에 재은이의 엄마가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지고 나서도 집중 치료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재은이는 두 달 여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께서 재은이를 정성껏 돌봐주셨지만 첫 아이가 누릴 수 있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재은이는 그 순간에 누리지 못했습니다. 재은이의 이름을 지어야 했을 때, 재은이의 아빠는 “다시 찾은 은혜” 라고 하면서 “재은” 이라는 이름을 딸에게 지어주었고, 모두가 그 이름의 의미를 알고 체험했기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재은이는 우리 집안에서 첫 번째 손주고, 조카였기 때문에 외삼촌과 이모의 사랑도 듬뿍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월급 받으면서 군복무를 했기 때문에 재은이 선물도 많이 사주었는데, 하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재은이가 말하고 뛰고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통해 가족들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우리 집안 식구들에게 다시 찾은 은혜를 체험하게 해 준 재은이는 너무나도 소중한 사랑하는 조카입니다.

 

2014, 재은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 수학여행을 갔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는 설악산이나 경주가 수학여행 단골 장소였는데, 요즘에는 제주도로 간다고 합니다. 일본이나 동남아시아로 가는 학교도 있다고 하니 세월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저는 미국에 있어서 재은이가 수학여행을 갔는지도 몰랐는데, 4 16일이 지나서 재은이 엄마인 제 누이가 저에게 전화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수학여행을 갔다가 건강하게 다시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일인지......” 세월호 사고가 일어나기 바로 일주일 전에 재은이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다고 합니다. 물론 재은이 학교에서는 비행기를 타고 갔는데 재은이는 아무 사고 없이 수학여행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크게 사고 없이 다녀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에 인천항을 출항했던 세월호라고 하는 화물과 승객을 운송하는 화객선을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 대다수는 결코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세월호 사건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던 충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2014년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지 벌써 5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던 재은이는 대학교 4학년의 나이로 훌쩍 성장했습니다. 만약에 세월호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사고로 소중한 생명을 잃을 수 밖에 없었던 학생들은 지금쯤 대학교 졸업반으로, 갓 회사에 입사한 사회 초년생으로, 혹은 결혼을 빨리 한 학생 중에는 한 가정의 남편 혹은 아내로 살아갈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은 자녀들을 키우는 저희 부부에게도 많은 깨달음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멀리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이 사건을 생각할 때마다 아직도 눈물이 나고, 그 사고로 사랑하는 자녀를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치적인 논리나 정쟁의 조건으로 세월호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의 마음으로, 특별히 자식을 둔 혹은 가족을 둔 평범한 보통 사람의 마음으로 이 불행한 사고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 사고를 바라보려 합니다.

 

자식을 먼저 보낼 수 밖에 없었던 한 성도님이 제게 “목사님, 아들을 먼저 보낸 지 벌써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아들이 내 가슴에 남아 있어요. 살아 있으면 목사님보다 나이가 더 많은데도 말이에요......” 자식을 먼저 하늘나라 보낸 부모는 평생을 그 사랑하는 자녀를 가슴 속에 간직하면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을 담아 4,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이 주일 아침, 세월호 희생자들과 희생자들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유가족들을 위한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치유하여 주시고, 부활 소망을 의지하며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사망 권세 이기신 주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반드시 체험하게 하여 주소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회복시켜 주시고, 주님의 따뜻한 손길로 감싸 안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