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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고전적인 교회론의 특징들”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6-04-28 (목) 05:26 조회 : 508

March 6, 2016

교회: 고전적인 교회론의 특징들

 

     교회에 왜 많은 문제들이 생길까요? 왜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공동체와는 다르게 문제 해결이 어려울까요? 교회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는 기독교 역사와 전통 속에서 이해되었던 고전적인 교회론의 특징들에 대해서 함께 이해하려고 합니다. 나 개인의 이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2000년 역사 속에서 교회가 어떻게 이해되어왔고, 존재해 왔으며, 그 가운데에서 성장하고 발전했는지를 함께 이야기 나누려고 합니다. 다음은 미글리오리 교수의 조직신학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때로는 내용에 대한 부연 설명을 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와 동일시 되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그 모습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대해 증언하고 고백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역동적인 삶의 긴장감을 가지고 지내는 것 또한 당연한 일입니다. 이러한 긴장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긴장의 과정을 통해 서로 수정하고, 서로를 더욱더 풍성하게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오히려 그러한 긴장이 교회의 일치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일체의 제도에 의해 운영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도 중심적인 교회로 가느냐, 아니면 은사 중심의 카리스마적인 공동체로서 유지되는 것이 좋으냐, 이 둘 중에서 양자택일하라고 하는 이분법적 선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영적인 생명성이 없는 제도적인 교회 형태가 공허하고 죽은 것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어떤 형태와 제도가 없는 영적인 생명성만을 추구하는 교회 또한 무질서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 질서는 존재론적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영원한 것이 아니라 임시적으로, 위계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작용하는 것으로 이해 되어져야만 합니다. 교회의 질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의한 개혁에 언제나 철저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예배에만 집중하는 교회를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사회 참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복음 운동에 적극적인 교회를 선택할 것이냐, 이와 같이 양자 사이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교회의 진정한 의미를 파괴하는 잘못된 행동입니다. 찬양과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봉사와 실천에 반대되어서는 안 되며, 봉사와 실천 역시 찬양과 기도에 반대되어서는 안 됩니다. 때때로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있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 문을 열지 못하게 하는 기도가 있고, 예배가 있습니다. 의미 없는 싸움 가운데 진정한 교회에서의 신앙 생활을 방해하고 훼방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말씀의 교회가 옳다, 성례전의 교회가 옳다, 혹은 그 반대의 형태가 옳다 등등의 경쟁 구도는 교회 전체의 참된 가치를 파괴하는 의미 없는 행동입니다. 각 교파마다, 개 교회마다 독특한 특수성이 있고, 초대 교회부터 흐르고 있는 교회로서의 보편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고전적인 특성들을 효과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마치 현대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교양 과목으로 고전 음악을 들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고전을 알아야 고전에 비추어 현대를 조명해 볼 수 있습니다. 고대 기독교 신자들의 신앙 고백이며 사도 신경의 기초가 되는 니케아 신조에 의하면,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적이고 사도적입니다.'

 

그렇다면 첫 번째로 교회의 통일성 (unity)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교회의 통일성은 교회 조직, 교회 직책, 교리나 프로그램 등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통일성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새로운 교제 속에 뿌리를 둔 독특한 통일성입니다. 흔히 교회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하나됨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성령의 교제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가 일반 사회 공동체와 구별되는 가장 근본적인 내용입니다.

 

교회의 통일성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에 부분적이며 잠정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통일성은 다른 사람과 교제를 맺으며, 교제 속에서 정체성을 찾는 사랑의 통일성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 속에 기반을 둔 교회의 통일성은, 다른 것과의 교제를 아낌없이 축하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 이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매우 다양한 존재들을 존재하게 하십니다. 화해자로서 하나님은 새로운 교제 안에,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각자 서로로부터 이전에 소원하게 관계했던 사람들을 서로 결합시키십니다. 성결하게 하시는 성령이신 하나님은 많은 민족과 문화와 소수 민족 그룹의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를 가져오시며, 많은 은사와 더불어 교회와 세상에서 서로 섬기도록 그들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신약 성서는 교회의 통일성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일성의 표현으로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친교를 반영한 통일성입니다 (요17:21).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 화해되고 이제 한 분이신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로 나아가게 된, 전에 멀리 떨어져 있었던 사람의 통일성입니다 (엡2:18).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의해 생성된 통일성은 우리를 어렵게 만들고 괴롭게 하는 통일성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에 의해 고백되고 희망 속에서 기다리며, 이제 오직 부분적으로만 경험되는 독특하고 풍성한 다양성입니다. 하나의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향한 길 위에 있습니다. 그것은 순례자의 교회이며, 이제 주님의 식탁 주위의 인간의 새로운 통일성을 찬양하지만, 동서남북으로부터 온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 평화와 기쁨으로 함께 앉아 있을 위대한 종말론적인 잔치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눅13:29).

 

우리도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내 몸을 움직여 참석해야 합니다. 나를 데리러 오지 않습니다. 내가 직접 가야 합니다. 천국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그러한 움직임이 가능할 수 있도록 우리 교회 공동체가 거룩한 하나님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 모두가 성령 안에서 하나됨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 거해야 합니다.

특별히 이 거룩한 사순절 기간, 성령과 하나됨을 누리고 체험하시기를 소망합니다.